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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9, 2023

[Korean] 우리 곁에 왔던 어떤 우주: 물리학자 오용석(1965-2023)을 추모함

[Source: https://crossroads.apctp.org/cop/bbs/000000000000/selectArticleDetail.do?nttId=4014] 한 우주가 사라졌네요 육십 가까운 星霜을 이어오던 리듬과 규율 질풍과 드라마 그 오묘한 분자들의 조합 그리고 그윽했던 풍경. 그 옛날 신라 고승의 누이처럼 사월 교정의 목련처럼 가노라는 말 못다 이르고 속절없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씨줄날줄 우릴 엮은 카르마만 남기고. 어째 이리 홀연히 길을 재촉했을까요 이제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불처럼 타올랐고 물처럼 흘렀으며 흙처럼 묵직했던 그 우주. 이제 그 불도 물도 흙도 제자리 찾아 돌아가 버렸어요 나는 그 불과 물과 흙으로 빚어진 사금파리를 꿰맞추다 철퍼덕 퍼질러앉고 말았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 눈뜨면 맞닥뜨릴 그 우주의 부재에 그만 아득해졌어요. 아스라히 멀어지는 그 우주의 풍경도 이제 Read more
April 14, 2023

[Korean] 혁신의 그늘

[Source: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452807] 하나. 2016년 3월 9일. 당대 최고의 기사 이세돌의 제1국 패배는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19 곱하기 19의 바둑판에서 주거니 받거니하는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또 주어진 바둑의 규칙에 따라 승리를 도모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기계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둘. 나 자신, 탄소나노튜브가 막 세상에 나온 후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여 ‘나노’의 전성시대를 함께 살아왔지만, 2009년 직장동료가 갓 뽑은 하이브리드 3세대 프리우스를 얻어탈 때만 해도 테슬라의 전기차가 이토록 무섭게 자동차산업의 게임 규칙을 바꾸게 될 것이라 생각 못했다. 셋.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마무리된 2003년 무렵만 해도 인간의 몸이 저마다 다른 미생물의 생태계를 품고 Read more
August 13, 2021

[Korean] 이타성이 호모 사피엔스를 구원하리라

[Source: https://horizon.kias.re.kr/18431] 스코틀랜드 하이랜드Highlands의 굽고 좁은 산길을 따라 차를 몰다 보면 한동안 맞은편에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오른쪽 안면이 시큰거림을 느낀다. 내 차는 부지불식 간에 길의 왼편으로 붙으려 하고, 때로 덩치 큰 트럭이나 버스와 교행할라치면 왼쪽 바퀴들이 포장된 노면과 흙길의 경계를 들락거리기도 한다. 비슷하게 좁고 굽은 알프스의 산길을 지날 때 왼쪽 안면 신경이 과민반응한 적이 있었던가? 느끼지 못했던 불편이다. 자연의 섭리에 좌우가 따로 없으니, 옛 영연방이나 일본 사람들이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를 여행할 때도 아마 비슷한 불편을 겪으리라 짐작한다. 이제 시야가 트인 한적한 왕복 2차로. 나직이 깔린 구름 아래 언덕을 아스라이 내려오던 세단의 형체가 드러나고 드디어 서로의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 Read more
September 27, 2020

[Korean] 천성과 양육, 운수소관과 인과율

[Source: https://horizon.kias.re.kr/8351] 청명한 가을날 국가기간시설의 일부인 저유조 하나가 검은 연기와 함께 전소되었다. 간헐적인 폭발과 화염이 17시간이나 지속되며 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인즉, 전날 밤 800여 미터 인근 초등학교의 ‘아버지캠프’에서 풍등이 날아올랐다. 불씨가 꺼진 채 주변의 공사장에 불시착한 풍등은 이튿날 호기심어린 한 젊은 노동자의 손에서 다시 한번 날아올랐고 확률의 장난은 풍등이 품은 살아있는 불씨를 정확히 저유조로 날려 보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자칫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던 사건의 전모는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고, 이제 사건은 사법과 책임소재에 관한 논쟁으로만 남은 듯하다. 2000년 여름, 에어프랑스의 콩코드 여객기가 샤를 드골 공항을 이륙한 지 2분이 채 못 되어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했다.[1] Read more
December 5, 2011

[Korean] 행복총량 보존의 ‘법칙’?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인도에서 발생한 자이나교(Jainism) 계열의 종교에는 누구나 한 생애 동안 쉬는 숨의 횟수는 일정하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요가 수련에서 숨쉬기 운동이 강조되는 것도 호흡 조절을 통해 생명의 템포를 느리거나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과학적인 관찰과는 거리가 있지만 사람이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무언가의 총량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는 흥미로운 점들이 있다. 에너지가 새로이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고 다만 전기, 빛, 소리 등의 형태로 드러나는 모습을 바꿀 수 있을 뿐이라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자연의 섭리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는데 중요한 직관을 제공했던 것처럼 무언가가 보존된다는 관점은 새로운 통찰의 기회를 줄 수 있다. 물질적 풍요와 번영의 시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궁핍과 Read more
November 5, 2011

[Korean] 관계의 그물

지구상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한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유황온천의 펄펄 끓는 물 속, 남극 빙하 밑, 초강산성(pH<0.1)을 띠는 폐광 유출수, 심해 열수 분출구,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 2~3 km의 암반과 같은 극한 환경 속에서도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발견되었다. 당연히도 풍부한 유기영양소와 적당한 온도가 갖추어진 인체의 안팎은 미생물이 살아가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건강한 신체에도 구강, 피부, 장기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조직에는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미생물들이 인체의 면역체계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비로소 이 균형의 붕괴가 당뇨, 비만 등의 대사질환 및 다양한 인간질병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한 연구가 저변을 확대해 가고 있고 서구의 여러 나라를 Read more
October 15, 2011

[Korean]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고집스럽게 옛날식으로 물질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제주도의 해녀 할머니가 방송에 나왔다. 리포터가 물었다. “할머니, 스쿠바 장비를 사용하면 훨씬 편하잖아요?” “그럼 편하지. 혼자서 백 명 몫은 하지.” “그런데 왜 안 쓰세요?” “내가 그걸 쓰면 나머지 아흔 아홉은 어떻게 살라고?” 심드렁한 할머니의 대답에는 우리가 도덕 시간에 배운 어떤 가르침에도 없던 울림이 있었다. 한편으로 놀라운 속도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우리의 일터와 학교에서 여전히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선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흡사 멸종 직전의 희귀종을 대하는 듯한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된다. 사실 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은 ‘모’ 아니면 ‘도’이다. 초고속 무선인터넷 보급률 1위, 청년층 대학교육 Read more
September 24, 2011

[Korean] 주사위 굴리는 과학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한 날 한 시에 제조된 자동차는 정말 똑같다고 볼 수 있을까?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로 만든 요리는 과연 똑같을까? 주관적 차이를 제외하더라도 완벽하게 똑같은 둘을 찾아보기란 의외로 어렵다. 심지어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를 보아도 성격이든 외모든 둘이 똑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아니 엄밀하게 말해 과학에 기반한 기술의 발전이 대량생산과 소비의 물적 토대를 제공하게 되면서 우리가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믿음의 하나는 절대적이고 결정론적인 지식이다. 오늘날 공학적으로 구현된 과학의 원리는 인간의 능력 밖이라고 치부하던 일들을 그것도 ‘기적’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재현가능한 방식으로 이뤄냄으로써 과학을 종교적 신념이나 전통적 가치에 상응하는 교리(dogma)의 Read more
August 14, 2011

[Korean] 궁해야 통한다

최근 일리노이 대학의 심리학자들이 지능, 성적, 신체조건 등이 고르게 분포된 두 학생집단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연구자들은 철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단어나 문장을 만들어내는 어휘퀴즈(이를테면 ‘rat’으로부터 ‘art’, ‘George Bush’로부터 ‘He bugs Gore’ 따위를 유추하는 일)를 준비했다. 그리고 1분 동안 한 집단에게는 ‘문제를 풀 것인가(Will I?)’ 생각해 보게 했고, 다른 집단에게는 ‘곧 문제를 풀게 될 것이다(I Will)’라고 생각하게 했다. 이후 10분 동안 두 집단의 학생들은 같은 문제지를 풀었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이른바 ‘Will I?’ 집단이 ‘I Will’ 집단보다 월등히 많은 문제를 푼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실험뿐 아니라 최근의 관련연구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결론은 결국 창의성을 고취하고 발휘하는 Read more
December 25, 2010

[Korean] 물리학: 고전적 학문, 새로운 관점

물리학이 다른 과학적 탐구활동과 구분되는 특징은 보편적 지식의 추구라 하겠습니다. 연구대상으로부터 정의되는 다른 전공들과 달리, 물리학은 다양한 추상수준의 “구성입자” 간 상호작용으로부터 계의 구조와 동역학을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엄밀한 인식의 틀을 구축해 왔습니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 빛의 속성, 응집물질의 물성, 분자 수준의 생명현상 등, 그 자체로 독립적인 분야를 이루는 주제들도 물리학으로부터 자연스레 나타났고 또한 물리학의 이론으로 통합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분자나 원자 수준에서 이루어진 기술적 발전, 계산능력의 급속한 확충과 대규모 실증적 데이터의 축적 등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학문 간 융합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물려 대학에서는 교육과 연구 단위의 구조조정과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