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한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유황온천의 펄펄 끓는 물 속, 남극 빙하 밑, 초강산성(pH<0.1)을 띠는 폐광 유출수, 심해 열수 분출구,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 2~3 km의 암반과 같은 극한 환경 속에서도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발견되었다. 당연히도 풍부한 유기영양소와 적당한 온도가 갖추어진 인체의 안팎은 미생물이 살아가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건강한 신체에도 구강, 피부, 장기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조직에는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미생물들이 인체의 면역체계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비로소 이 균형의 붕괴가 당뇨, 비만 등의 대사질환 및 다양한 인간질병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한 연구가 저변을 확대해 가고 있고 서구의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새로운 관점의 생리·의학 연구에 많은 연구자원이 투입되고 있다.
우리의 몸에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은 대장균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포함해서 약 1000종에 달하고 이들의 수는 대략 100조에 이른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의 수가 줄잡아 수십조개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 몸에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헛갈리기조차 한다. 우리 몸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나의 거대한 미생물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또다른 재미있는 점은 개개의 미생물을 종별로 분리하여 배양하고자 했을 때 99% 이상의 미생물이 배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연 상태에서 여러 다른 종들과 어우러져 잘 살던 것들이 적절한 온도, 영양, 산소, 수분 조건을 갖추어 주었는데도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은 인간을 포함한 거시세계의 생태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종 간 상호의존성의 또다른 표현이다. 어떤 미생물에게 독성이 강한 분자라 하더라도 또다른 미생물에게는 필수적인 영양소가 될 수 있고 이런 대사적인 다양성은 미생물 생태계가 개별 종들의 단순합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는 관계로 얽힌 ‘관계의 그물’을 구성하는 바탕이 된다.
실험자원과 연구비에 구애받지 않는 자연사적인 혁신의 과정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생명체를 더욱 정교하고도 안정된 방향으로 진화시키는 추동력이 되어 왔고 이 과정에서 관계의 그물이야말로 더욱 완성도가 높은 생명체를 탄생시킨 산파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미 고도로 분업화된 인간사회 역시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구성인자 개개인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이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이들 간의 관계의 그물에 시선에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저마다의 존재의 이유를 더욱 뚜렷이 볼 수 있다. 비록 각각의 개체들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공동체라는 거대한 언덕을 지탱해 주는 칡넝쿨같은 것이라면 이 관계의 그물, 즉 구성원 간의 연대와 상호에 대한 존중은 그 자체로 공동체의 자산이고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기술적 혁신의 산업적·경제적 가치를 말할 때 흔히 듣게 되는 “몇 십, 몇 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표현은 순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급변하는 생존환경 속에서 창의적 활동의 중요성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지만 사람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넘쳐나면 넘쳐나는대로 그 존재 자체로 자신이 먹고 살 몫은 다하며 산다. 일찍이 생명체를 있게 한 자연의 섭리가 그렇듯 복잡다난한 인간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힘 역시 관계의 그물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되새긴다면 단순히 돈으로 환산된 가치를 타인의 생존에 결부시키는 일은 물신숭배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월가를 중심으로 세계도처로 번져가고 있는 ‘99%’의 목소리도 이 관계그물의 파국을 바라지 않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이리라. [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