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rce: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452807] 하나. 2016년 3월 9일. 당대 최고의 기사 이세돌의 제1국 패배는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19 곱하기 19의 바둑판에서 주거니 받거니하는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또 주어진 바둑의 규칙에 따라 승리를 도모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기계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둘. 나 자신, 탄소나노튜브가 막 세상에 나온 후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여 ‘나노’의 전성시대를 함께 살아왔지만, 2009년 직장동료가 갓 뽑은 하이브리드 3세대 프리우스를 얻어탈 때만 해도 테슬라의 전기차가 이토록 무섭게 자동차산업의 게임 규칙을 바꾸게 될 것이라 생각 못했다. 셋.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마무리된 2003년 무렵만 해도 인간의 몸이 저마다 다른 미생물의 생태계를 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소위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의 건강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생각은 개념적으로든 실증적으로든 생명과학의 주류 패러다임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작년 겨울,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인체분변에서 유래한 마이크로바이옴을 바탕으로 하는 신약 리바이오타Rebyota를 승인했다. 넷. 시리, 알렉사, 코타나 같은 ‘목소리 비서’를 부리면서 신통방통해 한 것이 불과 십 년 내외의 과거일진대, 기계가 원고 교정을 보고, 운율에 맞추어 시를 쓰고, 난상토론의 상대가 되어줄 날이 이리도 일찍 당도할 줄이야. Chat-GPT를 위시한 대규모 언어모델의 쓰임이 무서운 속도로 일상에 파고드는 2023년 4월 현재, 학계는 ‘표절’을 다시 정의하고, 교육 현장에서는 평가의 방법과 기준을 가다듬느라 분주하고, 시대의 인문정신들은 행여 뜻하지 않은 혁신의 부작용이 인간성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렇듯 돌이켜보면 혁신은 가랑비가 아니라 일진광풍처럼 다가왔다. 물론 그것은 필자의 과문 탓일 수 있다. 인공지능, 나노기술, 유전체학 분야에서 이미 조용히 그러나 쉼없이 혁신을 도모해오던 이들은 어쩌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회심의 미소와 함께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어우러져 빚어낼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몰고온 변화 앞에서 한 세대는 고사하고 십 년 후조차 내다보기가 벅차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혹은 “나 때는 말이야…”의 경험칙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멘토 부재상황을 배경으로 지금 이공계의 고등교육 현장은 쏠림이 우려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최근 무전공으로 입학한 과기특성화대학에서의 전공 선택 상황을 보면, 한편에서는 북새통이 된 전공과정 수업 때문에 저하될 수밖에 없는 교육의 질을 고민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학문후속세대의 명맥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로 전공 진입생 확보에 필사적이다. 이야말로 혁신의 그늘이 아닌가?
사실 이 쏠림의 밑바탕에는 혁신이 불러올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큰 불안이 드리워 있다. 또 그 불안의 이면에는 산업혁명 완성기의 노동자들을 러다이트luddite로 내몰았던 공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해묵은 의약계열 쏠림과는 다른 듯하면서도 모종의 기시감이 든다. 어느 누구도 바로 코앞에서 펼쳐지는 혁신의 드라마 속에서 비운의 조연이 되고 싶지는 않을테니.
하지만 인류는 어쨌든 없어지는 직업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직업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게다가 지금의 새내기들이 이 사회를 떠받치는 중추 구실을 하게 될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차피 확률의 영역에 있다. 십 년, 이십 년 전에 오늘의 자동차산업을 정확히 내다보고 대차대조의 견적을 뽑은 후에 전기화학을 전공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지금의 ‘대세’가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미래의 모습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지금 혁신을 선도하는 이들은 일이십 년 전의 유행에 휘둘려 그 우물을 파게 되었을까, 아니면 묵묵히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간 숱한 변화의 광풍을 뱃심으로 이겨낸 사람들일까?
교육수요자의 선택과 동기부여를 존중하는 것은 분명 성숙한 교육공동체가 제공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학문후속세대의 분포가 건강한 균형점을 찾고 다양성을 보존하도록 돕는 것은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덕목일 뿐더러 상아탑 바깥을 포함한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리스크 관리에 해당한다. 최근의 쏠림을 자연스런 부침으로 보고 자연선택과 자유방임을 고수하기에는 파고가 너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