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 다른 과학적 탐구활동과 구분되는 특징은 보편적 지식의 추구라 하겠습니다. 연구대상으로부터 정의되는 다른 전공들과 달리, 물리학은 다양한 추상수준의 “구성입자” 간 상호작용으로부터 계의 구조와 동역학을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엄밀한 인식의 틀을 구축해 왔습니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 빛의 속성, 응집물질의 물성, 분자 수준의 생명현상 등, 그 자체로 독립적인 분야를 이루는 주제들도 물리학으로부터 자연스레 나타났고 또한 물리학의 이론으로 통합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분자나 원자 수준에서 이루어진 기술적 발전, 계산능력의 급속한 확충과 대규모 실증적 데이터의 축적 등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학문 간 융합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물려 대학에서는 교육과 연구 단위의 구조조정과 아울러 학제적 교과과정이 널리 채택되고 있습니다. 물리학과에서도 전통적인 물리학의 연구대상에서 비껴나 있던 경제, 사회, 생명, 정보과학 분야와의 경계로부터 발전된 새로운 교과과정들이 꾸준히 물리학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와 함께 소위 융합연구에서 세계적 연구를 선도하는 많은 연구자들의 학문적 배경이 물리학이라는 사실은 보편성과 원리를 추구하는 물리학의 속성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이는 융합이 일상화되고 학문 간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무엇을 자신의 지적 기반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하여 좋은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굳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물리학이 제공하는 지적 훈련과 연구방법론은, 지난 세기에 우리가 지켜봐온 것처럼, 여전히 지식의 최전선을 누비는 강력하고 유효한 도구라 하겠습니다.